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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관련
즐거우니 할만하다
작성자
정영구 (경북도립대학교 자동차과 졸업생)
등록일
2020-01-08 11:17:38
조회
2,088
즐거우니 할만하다.
정 영 구

저는 호주 Melbourne에 있는 차량 BODY SHOP 서 현재 근무 중입니다.
제가 호주를 오기까지 한국에서 어떻게 준비를 했고 또 어떻게 현재까지 적응 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 합니다.
군대를 마치고 24살, 저는 경북 도립 대학의 도장전공 에 입학했습니다. 지금 의 은사님 이신 이유태 교수님께서 해외의 기술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그들은 대접 받으면서 기술자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저에게 큰 동기 부여가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우리 에게 교과서 위주의 교육을 하지 않으시고, 즐겁게 일하는 방법, 인내 하는 방법,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방법 그리고 우물안개구리로 살지 않는 방법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그렇게 해외로 취업하는 목표를 가슴에 품고 졸업을 하였습니다.

졸업 후 나는 대구의 한 수입차량 브랜드 회사 서비스 센터에 취업을 하여 현장 실무경험을 쌓았다. 운이 좋게도 이 회사는 인재 양성 교육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실행하고 있었다. 또한 좋은 사수를 만나고 기술적인 부분과 사회생활에 대한 배웠다. 그리고 해외 취업을 염두하고 틈틈이 영어 학원을 다니고 자격증 시험 공부도 했다. 매일 있는 잔업과 학업에 피곤했지만 그 성취감은 정말 뿌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일을 하는 선배를 통해서 나는 호주의 Working Holiday 비자 호주에서 1년동안 일도 하고 여행도 할 수 있는 비자 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고민 또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진급이 되었고 회사 생활이 거의 적응 되었다.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이 상황에 나는 쉽게 결정 짓기 어려웠다. 주위 에서 걱정하는 시선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대답했다 ‘까짓 것 평생에 한번 오는 기회 한번 잡아 보겠다’ 말이다.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를 가기 전 필리핀 3개월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로 했다. 왜냐하면 호주의 어학원은 상대적으로 비싸기 때문이 다. 유학원을 통해 학원을 정하고 필리핀에서의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에만 집중 할 수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미친 듯이 영어 공부에 힘썼다. 영어로 수업 듣고, 대화 하고, 쓰고, 읽고 쉽지는 않았다. 심지어 나는 영어로 꿈까지 꿀 지경에 이르렀다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그리고 중, 고등학교 때 왜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았을 까 하는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학원 생활을 2개월쯤 하고 있을 때 난 호주를 갈 때가 다가왔음을 느꼈다. 초초하고 불안하고 겁도 많이 났다. 내가 과연 잡을 구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호주 Job 전문 사이트에 가서 서툰 나의 영어 실력으로 각각의 사장님께 편지를 적었다. 그렇게 편지를 보낸 지 1주일후 어느 조그만 한 회사 사장님께서 답장을 주셨다, “Do you have a resume?” 나는 즉각 답장 했다 곧 작성해서 보내겠다고. 그리고 나서 학원 선생님께 상황 설명 후 선생님 과 함께 이력서를 작성하고 바로 보냈다. 그리고 또 다른 답장을 받았다. 나랑 통화를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서툰 영어 지만 최선을 다해 나의 기술과 상황을 어필했고 그렇게 우리는 1달후 호주에서 만남을 갖기로 약속했다. 맘이 편해졌다. 그렇게 정들었던 Classmate 와 선생님과 이별을 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2주간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짐을 정리 하면서 마음이 덤덤했다. 설레는 맘도 있었지만 걱정도 한편으론 있었다. 그리고 나와 만남을 갖기로 하신 사장님께 틈틈이 전화해 나의 상태와 상황을 알렸다. 그렇게 나는 가족과 이별을 하고 호주로 왔다. 미리 정해놓은 Share 하우스에 짐을 풀고 호주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엔 모든 환경이 새롭고 신기 하였지만 사람 사는 것은 똑 같다는 걸 느꼈다. 어느 정도 생활에 필요한 부분 (TFN, Bank account, 등)을 준비한 후 약속을 한 사장님을 처음 만나 뵈었을 때, 어른이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해 버렸다,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봤고 나는 이것이 한국의 존경의 상징이라 설명했다. 웃기는 상황 이었다. 외국 에서 악수가 인사이지만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하지만 한국예절을 알리는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실은 이 사장님이 나를 한달 동안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이곳에서 일 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호주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먼저 환경이 틀렸고 언어가 틀리고 문화와 생각이 틀렸다. 개인적인 사고방식에 사로 잡혀있었고 협동이라는 것이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출, 퇴근 시간은 철저했다, 처음에 난 어느 정도의 일 에 대한 능력 테스트를 받고 실무를 보는 과정에서 영어가 서툰 난 거의 모든 부분을 눈치로 알아 듣고 일을 해나갔다. 한국이나 호주나 기술적인 부분은 지식은 크게 틀리는 게 없었기 때문에 일 적인 부분은 쉽게 적응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외국인인 지라 영어도 서툴고 생긴 것도 다르고 아시안 이라고 무시하고 깔보는 사람들도 당연이 있었다. 그 순간은 기분이 나쁘게 받아 들였고 욱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 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영어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고 기술적으로 남들보다 더욱 성실하고 좋은 제품을 생산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은 내가 작업한 차량을 보고 나에게 최고라고 표현해 주웠다 그 사람들은 나를 인정했고 나를 받아 주웠다.
호주는 정시 출근 퇴근이 대표적 이다. 어떻게 보면 일 을 하다 시간이 되면 하던 일을 놓고 집에 가는 게 당연한 일이고 작업자로 스트레스 받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부분의 적응 이 힘들었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는 모습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오늘로 끝 낼 수 있도록 노력했다. 오버타임이 을 하게 되면 시간당 2배의 임금을 지급해줘야 한다. 그래서인지 사장입장에서 부담이 되는 부분 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작업이 완료 되기 전 퇴근시간이 되었다고 집에 가자는 것이다. 나는 그럴 수 없다 라고 대답하고 오늘 일 을 끝을 내야 집에 가서 편히 쉴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돈을 버는 욕심 보다는 나의 일을 완벽히 끝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사장은 나를 믿어주기 시작했고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호주에서 지내 보니 바쁜 한국 과는 달리 나에게 많은 시간과 여유 생활이 안정 적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호주로 이민을 많이 준비 한다고 생각 했다. 정말 마음 은 편안한 나라였다. 그리고 기술자들은 확실히 대우받는 다 임금 적인 부분 과 생활 적인 부분에서. 모든 게 좋았다 난 머물 수 있음 머물고 싶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을 때쯤 사장이 나에게 457 스폰서 비자를 신청하자 했다 이 비자는 4년동안 일을 할 수 있고 한 고용 주 밑에서 2년 동안 일을 하면 고용주가 지명하여 영주권을 받는 비자였다. 나는 457 비자를 받기로 했다. 그러나 회사도 스폰서 을 준비 해야 하는 입장이고, 나는 여러 가지 서류 와 중요한 IELTS 영어시험 성적 그때 당시 각 과목 Speaking, Reading, Listening, Writing 누락 없이. 5.0을 만족 시켜야 했다. 나는 그냥 한번 시험을 쳐보기로 했다 한번에 $330 비용이 발생 한다. 그래도 나름 나는 공부를 했다고 생각 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거의 대부분이 3.0 이라는 점수를 받았다.
6개월의 시간 밖에 남지 않은 시간에 나는 이 점수를 들고 IELTS 학원을 알아 보았다. 대부분의 학원에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3.0 에서 5.0까지 힘들다고 말을 했다. 나는 좌절했다. 영어 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현실과 직면했다. 그래도 나는 남아있는 시간 동안 어떻게든 해보려고 틈틈이 공부하면서 시험을 을 준비했다. 혼자서는 너무 어려워 개인 과외도 시작하고. 심지어 1달동안의 IELTS 전문 학원에 강의 도 듣고 매일 시험의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5번째 시험을 쳤을 때 성적이 조금씩 오르는 것이 보였다. 가능성 은 있다고 생각 했다. 하지만 고비는 6번째 시험 이었다 .4.5점을 받은 딱 한과목만 빼고 모두가 5.0을 받았다. 그저 단지 0.5점의 차이로 다시 치고 또 다시 치기를 반복했다.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달려온 것이 너무 아까웠다. 어느덧 시험을 준비하는 중에 회사는 모든 비자 준비를 완료하고 나의 영어 점수를 기다리는 상황에 이르렀고 시간이 흘러 Working 비자 가 끝나 갈 때쯤 9번째 시험을 쳤다. 그리고 아홉 번째 시험 결과를 받는 날 아침 불행하게도 또 한 과목에서 0.5점을 누락 시키고야 말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편지를 받았다. 그것은 바로 이민성 에서 보낸 비자 거절 메시지였다. 이유는 영어점수를 만족하지 못해서 이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나는 좌절했고 나에게는 2가지 옵션이 있었다 하나는 28일 안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 또 하나는 비자 재심을 신청하는 일. 영어점수 없이 재심사를 신청해봐야 패소 당연한 결과였다. 나 자신 이 너무 밉고 싫었다. 2주 후 미리 예약을 해놓은 마지막 10번째 시험 날짜가 왔다. 정말 나 에게는 이번 시험이 마지막 이었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험을 쳤다. 그렇게 마지막 시험을 치고 나니 마음이 편한 했다. 모든 결정은 마지막 시험 결과에 달려있었다.
드디어 결과가 나 오는 날 아침 일찍 결과를 확인 했다. 심장이 떨렸다 복권을 확인 하듯 손가락으로 가려가며 한 과목씩 확인해 나갔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마지막 네~네 넷 ………………5.0 합격 이었다 내가 드디어 해냈다 나는 그 아침 너무 기뻐 소리를 질렀다. 그때 그 기쁨은 말이나 글로 표현이 되지 않는다. 그 동안의 그 고생이 한 순간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이 기쁜 소식을 가족 과 주의에 나를 걱정해준 사람들에게 전했다. 그날 이후 나는 포기란 내 사전에 없다고 깊이 새겼다. 어떠한 시련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반듯이 이루어진다 라고 확신했다. 물론 어떤 사람은 IELTS 이 머라고 10번을 치냐 돈이 아깝다 하겠지만 난 부끄럽지 않고 끝까지 버텨준 나 자신 그리고 나를 믿고 기다려준 가족, 회사사장 그리고 주의 사람에게 에게 감사했다.

그렇게 마지막 시험 후 재심청구 하고 비자를 기다리는 동안 재심 기간이 2년이라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기다릴 수 없어 457 비자를 다시 신청하기로 하고 이번에 제대로 준비해서 신청을 했다 영어 점수를 확보한 상황에 못 할 것도 없었기에 457 비자 재 신청 후 비자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영주권을 준비 하는 중이다. 호주정착에 첫 걸음마를 때기 시작했고 앞으로 어떠한 일들이 펼쳐 질지는 모르지만 나는 꿈을 이룰 것이고 또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 할 것이다.